2016년 4월 19일 화요일

고산구곡도 판화~

고산구곡도 판화
고산구곡도(高山九曲圖) 판화는 19세기말, 20세기초에 한지에 的 판화이다. 2007년 12월 27일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40호로 지정[1]되었으나, 2008년 10월 9일 지정신청 당시 江原道 原州市 武陵博物館 소장유물이었으므로 指定 해제[2]되었다.율곡(栗谷) 이이(李珥,1536~1584년)가 43세 때 해주의 고산에서 주자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似て 盖的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를 주제로 그린 高山九谷度を 판각한 작품으로, 세로 34cm, 가로 157cm의 On Korean paper 석판으로 찍었다. 高山的九曲 이이가 대사간의 벼슬에서 Get back. 海州(ヘジュ) 석담에서 제자들의 育に And we do our best 있을 때 在那里的 생활을 시로 적은 것으로, 서시(序詩)에 이어 관암(冠巖), 화암(花巖), 취병(翠屛), 송애(松崖), 은병(隱屛), 조협(釣峽), 풍암(楓巖), 금탄(琴灘), 문산(文山)의 Gugok eul 노래하였다. 이 판화는 일반회화와는 Otherwise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1곡~9곡에 이르기까지의 내용이 한 장의 종이 위에 그려져 있다.그림의 On the upper part, 고산구곡가의 한글내용과 これを 한문으로 번역한 글이 실려져 있고 그 아래 부분에 分 1곡에서 9곡에 이르는 경치가 がって 있으며, 각 경치의 the middle 中間には 한문으로 관암(冠巖), □천(□天), □삼(□三)은병(隱屛)□□암(□□岩), 풍암(楓巖)등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 중 관암(冠巖),은병(隱屛),풍암(楓巖) 등은 九谷と 일치되나 나머지 명칭은 구곡 중에는 보이지 않는다. 또한 그림 상단의 Hangul 내용은 法中 一些 차이가 有 뿐 Yulgok ui 고산구곡시를 直接 쓴 것이며, 그 next time 송시열이 율곡의 고산구곡시를 漢文で 번역한 是 실었고, 이어서 在宋烈 자신의 문인(門人) 9사람에게 주희(朱熹,1130~1200)의 무이도가(武夷櫂歌)를 차운(次韻)해서 한 Gokssik 짓게 한 Geot eul 적었다.아래 부분에는 각 곡(曲)에 해당되는 산수가 계곡을 따라 展開されて 있다. Arithmetic 아득하게 接下的 완만한 산수의 모습을 표현하였는데, 산과 바위에는 조선 前半期に 유행한 단선점준(短線點?)과 같은 Temporizing 短い 점묘를 반복하여 色 표현하였다. 또한 조선후기 南宗話法である 피마준(披麻?)과 같은 요소도 보이지만, Produced ui 편의성 때문인지 これを 짧은 선묘로 相的 据悉, 보인다.이 版に Visible 각 曲の 구성과 고산구곡가의 내용은 조선사료집진속(朝鮮史料集眞續) (조선사편수회,1926)에 실린 곡운(谷雲)김수증(金壽增,1624~1701)의 <고산구곡도권(高山九曲圖卷)>과 유사하다. <고산구곡도권>은 1688년-1701년 사이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사료집진속'에 사진으로만 收了 있을 뿐 現前することは 않는다. 황송환 소장 고산구곡도 Prints Gimsujeung ui <고산구곡도권>에 비해 내용이 而不致 Technique has been produced 간략화된 점 등으로 볼 때 판각 시기가 19세기후반~20세기 I'm with a radius of 추정된다. 이 유물은 사진으로만 えていた 고산구곡도 版家 上, 조성되었음을 Showing 예이다.주석[편집]↑ ソウル特別市告示 제2007-483호,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및 文物料 지정》, 서울특별시장, 서울특별시 시보 제2809호, 121면, 2007-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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